과일 향과 스파이스의 농밀함을 담은 장미, 달콤하고 크리미한 재스민, 시원하고 풋풋한 엘더플라워.
한여름 꽃밭에서 풍겨나는 향들이 아닌, 와인 글래스에 담긴 와인 꽃향기들이다.
꽃을 만지는 일을 직업으로 살아온 플로리스트로서 익숙한 꽃 향기들을 또한 와인에서 만나는 것은, 행복한 반가움이다. 그리고 와인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아름다운 꽃이 와인에서도 같은 향으로 피어난다는 것은 참 기분좋은 설레임일 것이다.
이런 와인 꽃향기는 왜 나는 것이고, 어떻게 찾을 수 있으며, 어떤 꽃의 향들일까.

와인에서 꽃향기가 나는 이유
와인의 꽃향기는 그저 낭만적인 환상이 아닌, 화학적 물질이 만들어낸 순수한 향이다. 그리고 꽃과 포도는 그러한 특정 화합물을 실제 같이 공유하기에 와인에서도 꽃향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장미향은, 꽃잎 안에 제라니올(geraniol)이라는 화합물이 있는데, 이 물질은 여러 포도 품종들의 껍질 안에도 존재한다.
포도가 수확되고 그 화합물을 가진 포도에서 발효가 시작되면, 포도안에 있던 향 분자의 봉인이 풀리면서, 그 과정에서 장미, 재스민, 오렌지 꽃..등의 꽃향이 액체 안으로 녹아들게 된다.
인공 향료가 아닌, 포도와 흙, 그리고 자연의 화학 과정이 빚어낸 순수한 성분으로, 어떤 와인은 이러한 꽃향을 진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와인은 과실 향 아래 속삭이듯 섬세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꽃향기는 품종 자체의 특성이기에, 모든 와인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꽃향 화합물이 거의 없는 품종들도 있다. 하지만 와인에서 꽃향기가 선명하게 느껴진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양조 과정에서 꽃향을 살리기 위해 저온 발효와 섬세한 양조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내게 오기까지의 유통 과정동안 와인의 신선도가 잘 지켜졌다는 반가운 정보다.
누군가가 와인에서 “자스민 향이 난다”라고 말하는 것은 괜한 허세가 아니고, 코가 실제로 감지한 그 화학적인 향의 성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후각이 그 와인 꽃향기들을 찾아내는 순간, 이 모든 것은 이제 기분 좋은 와인 경험으로 이어지게 된다.

와인 꽃향기, 어떻게 찾아볼까
와인 향을 맡고 그 향들을 분별하는 것은, 연습과 집중으로 쌓아가는 경험의 과정으로, 선천적인 능력이 아닌 훈련된 기술과 같다.
스월링 전에 먼저 향을 맡아 보기
와인이 열리면서 천천히 드러나는 레드 와인의 꽃향기와 달리, 화이트 와인의 꽃향기는 휘발성이 강해 글래스에 따라진 직후 가장 선명하다. 어떤 방해도 있지 않은 그 시작의 순간이 가장 꽃향기를 잘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먼저 스월링하기 전 잔 가까이에 코를 닿게 한다. 어떤 향인지 알아보려 하지 말고 먼저 향을 받아들인 후, 이제 잔을 가볍게 스월링하고 두 번째 향의 물결이 다가오게 한다.
향을 맡을 때 입을 살짝 열기
코와 입으로 동시에 공기를 들이마시면, 향 분자가 후각 수용체에 닿는 경로가 두 배로 늘어나고, 유입되는 향의 양이 늘면 향이 좀더 선명해진다. 코로만 맡을 때와 차이가 있음을 느껴보는 것도 흥미로움을 준다.
한 모금 머금고, 공기를 살짝 들이마시기
와인을 입에 머금은 채 입술을 살짝 오므리고 공기를 조금 들이마셔 보면, 입 안에서 와인이 한 번 더 열리는 느낌이 온다. 그 다음, 입을 다문 채 코로 부드럽게 내쉬면, 아까와는 달리 여러 향의 층이 풍부하게 펼쳐짐을 느낄 수 있다.
코를 잠시 쉬게 하기
후각 피로는 생각보다 비교적 빨리 찾아온다.
꽃을 오랫동안 다뤄오면서 특히 더 실감하는 부분으로, 장미 박스를 한가득 풀어놓고 일을 시작하면 처음엔 작업실에 장미 향이 가득한데, 그 향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된다. 아마 대부분 비슷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와인 테이스팅에서도 마찬가지로, 와인 향을 계속 맡다보면 코가 마비된 듯 느껴지게 되는데, 이럴 땐 잠깐 물러서서 다른 공기를 몇 번 호흡하거나, 물컵 위에 코를 대고 숨을 몇번 들이 쉬면 금새 다시 회복된다.
참고로, 와인과 함께 물 한 잔을 두는 것은 실제 와인 테이스팅에 유용한 테이블 세팅이다. 알코올이 서서히 비강 점막을 건조하게 만들어 코의 감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물을 마시며 몸의 수분을 유지하는 것 또한 와인 향을 잘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스월링 전 첫 향 → 스월링 → 입 살짝 열고 두 번째 향 → 한 모금 머금고 공기 들이마시기 → 코로 내쉬기. 그리고 집중하기.
와인 꽃향기 7 가지 – 화이트 와인
화이트 와인에서 자주 만나게되는 대표적인 일곱 가지 꽃향기들, 그중 Part 1 에선 세 가지 꽃을 소개한다.
장미 (Rose)

장미 향의 주역은 제라니올(geraniol) 이라는 화합물로, 여러 품종의 포도 껍질에 존재하지만 특히 게뷔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라는 품종에서 가장 선명하게 피어난다.
이 이름은 독일어로 ‘향신료 향의 트라민 포도’라는 뜻으로, 이 품종의 향이 얼마나 강렬한지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실제로 향이 상당히 풍부한 포도 품종이다.
잘 만든 알사스 산지의 게뷔르츠트라미너 와인은 장미수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확하게 그 꽃향기를 담아내는데, 와인인지 향수인지 혼동될 만큼 선명하다.
뮈스카(Muscat) 품종의 장미향은 조금 더 부드럽고 둥글게 표현되고, 아르헨티나 토론테스(Torrontés)는 좀 더 화사하고 풍성한 장미향을 보여준다. 피노그리(Pinot Gris)에선 과실향에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좀 더 조용한 장미향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장미향이지만 품종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로 표현됨을 알아가는 것 또한 테이스팅의 즐거움일 것이다.
재스민 (Jasmine)

장미가 직접적이고 진하다면, 재스민은 좀 더 따뜻하고 이국적인 향으로, 서서히 깊어지며 나타난다.
재스민 향은 비오니에(Viognier) 라는 품종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피어나는데, 살구, 복숭아 같은 풍성한 과실향과 재스민 꽃향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이 품종은 향이 워낙 풍부해서, 잔을 들기도 전에 먼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질감도 독특해서, 다른 화이트 와인에 비해 묵직하고 크리미한 편이라, 향뿐 아니라 입 안에서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비오니에의 대표 산지는 프랑스 론 밸리 북부의 콩드리유(Condrieu)로, 한때는 재배 면적이 워낙 줄어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품종이었다. 하지만, 소수의 헌신적인 생산자들이 지켜낸 덕분에, 지금은 북부 론 밸리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인 시라(Syrah) 품종과 함께, 이 지역 대표 화이트 품종으로 주목 받는 아름다운 와인이다.
캘리포니아의 파소 로블스(Paso Robles)나 센트럴 코스트에서도 좋은 비오니에 와인이 생산되는데, 론 밸리보다 과실향이 더 풍부한 편이지만, 재스민 꽃향기는 여전히 아름답게 살아 있다.
아르헨티나 토론테스(Torrontés) 도 재스민 꽃향기를 잘 보여주는 와인으로, 가격은 꽤 합리적이면서 장미, 재스민 등의 꽃향이 풍부해서, 와인 아로마 중 꽃향기가 어떤 건지 처음 보여주고 싶을 때 내가 종종 소개하는 와인이기도 하다.
엘더플라워 (Elderflower)

엘더플라워는 유럽 각지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크림빛 꽃으로, 크기는 작고 섬세하지만 향기는 강한 꽃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딱총나무로 알려져있는데, 와인에서 말하는 엘더플라워는 같은 종에서도 서양접골목 또는 블랙 엘더베리 나무 종류 향에 가깝다고 한다.
이 꽃향은, 시원하며 풋풋하고 향긋한 청포도 향에 가까워서, 농도가 진하면서 살짝 크리미하지만 무겁지 않은 달콤함을 보여준다.
엘더플라워의 ‘모노테르펜(Monoterpene)’ 이라는 성분이 또한 포도 안에 들어있어서, 같은 와인 꽃향기를 만들어내는데,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품종에서 특히 엘더플라워 향이 잘 표현된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에선 싱그럽고 청량한 느낌으로, 프랑스 상세르(Sancerre) 소비뇽 블랑에선 미네랄에 스며들어 좀더 조용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프랑스 알사스 지방의 주요 품종들인 리슬링(Riesling)과 게뷔르츠트라미너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이 와인들에선 농도 짙은 달콤한 엘더플라워 향의 매력을 보여준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이트 와인인 그뤼너 펠트리너(Grüner Veltliner)에서도 엘더플라워 향기를 만날 수 있다. 화이트 페퍼의 스파이시함과 라임의 산뜻함이 특징인 와인으로, 엘더플라워의 풋풋함과 싱그러운 느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마치 아침에 피어나는 은은하고 우아한 꽃처럼 표현되곤 한다.
다음 편으로
세 가지 꽃향기 — 장미, 재스민, 엘더플라워 — 는, 서로 다른 개성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다음에 화이트 와인 잔을 들 때, 이 꽃향들을 한번 찾아보면 흥미로운 테이스팅 경험이 될 것이다.
파트 2 에서는 화이트 와인 꽃향 시리즈에서 소개할 나머지 네 가지 꽃향기를 소개할텐데, 은방울꽃, 오렌지 꽃, 허니서클, 아카시아, 이야기와 함께, 화이트 와인의 꽃향기를 더 잘 즐기기 위한 실용적인 팁도 함께 소개 된다.
▶ 이어 읽기: 7 화이트 와인 꽃향기,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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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Floria/방플로리아 — 와인 교육자, 작가, 플로럴 디자이너. 캘리포니아에서 세계 와인산지로 여행하며 와인과 꽃,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합니다. 작가 소개 더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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