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공원의 흙 위에서 뛰어놀고 있다.
손가락으로 땅을 파고, 흙 한 줌을 쥐어 햇빛에 비춰보다 까르르 웃기도 한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흙을 콩콩 파기도, 툭툭 다독이기도 하면서, 플라스틱 장난감을 갖고 놀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행복해 한다.
흙이 기쁨이 된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본능일지 모른다. 발 아래의 땅이 단순한 지면이 아니라 아름답게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 그러므로 지켜야 할 소중함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왠지 어린 아이때 부터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흙이 우리에게 진정한 가치라면, 오늘 우리가 밟은 이 땅은 다음 세대에도, 그 다음 세대에도 똑같이 살아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한 신념은, 우리가 사랑하는 바로 그 곳에서도 나타난다. 바로 와인 한 잔에서이다.
웰빙 라이프 스타일과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내추럴 와인과 유기농 와인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우수한 와인이 되기 위해선, 포도 품종, 빈티지, 양조 기술, 생산자등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포도나무 아래, 깊은 땅 속에서 먼저 시작된다.

토양 — 포도나무 아래 숨겨진 건축물
프랑스 남부 론 지방의 샤토뇌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르나슈(Grenache) 와인을 좋아해서 생산자들을 더 알아보고자 방문했던 남부 론 밸리였는데, 오랜 역사에서 이어진 풍경도 아름다왔지만 그곳에서 특별히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 바로 포도나무들의 모습이었다.
땅에 바짝 엎드린듯 가까이 닿은 채, 뒤틀리고 주름진, 굵고 거친 그 나무 줄기들은, 마치 선사시대 유적처럼 보일 정도의 오래된 나무들이었다. 수령이 백 년을 넘는 것들도 많아서, 그곳에서는 50년 수령의 포도나무를 ‘어리다’고 부를 정도였다.
수십 년에 걸쳐 석회암을, 점토를, 여러 지층을 뚫고 내려갔을 그 뿌리들은, 지나온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통과했을 미네랄 층과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수많은 유기체들을 담은 토양 환경 하나하나는, 뿌리에서 줄기로, 가지로, 포도알 안으로 그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마주하는 와인 글래스 안에까지 담기게 된다.
이것이 곧, 테루아(Terroir)라는 말에 담긴 의미로, 어떤 다른 방법으로 복제할 수 없는, 환경이 가진 고유한 언어인 것이다.
내추럴 와인이 시작되는 곳 — 유기농, 비오디나미크, 친환경의 철학
내추럴 와인의 여정은 건강한 토양을 가진 포도밭에서 시작되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유기농·비오디나미크·친환경의 철학이다.
세 가지 농법
비오디나미크(Biodynamique/Biodynamic) 농법은 신비로운 면이 있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달의 주기를 따라, 가지치기부터 추수까지 일 년의 포도 농사, 착즙에서 병입에 이르는 양조 전반을 조율하는 농법으로, 자연 식물로 천연 비료를 만들고, 하나의 농장을 자급자족 생태계로 포도 재배에서 와인 양조까지 이어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철학으로 와인 한 병을 완성하는 일은 생각보다도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해서, 진정한 신념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헌신이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와인에는 그 순수한 과정만큼이나 순수한 향이 담기게 된다.
유기농(organic) 농법은 합성 농약과 화학 비료를 배제하는 농법이다. 물 사용을 줄이고,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며, 다음 세대도 같은 땅에서 농사지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선, 더 넓은 시각을 취하는 친환경(sustainable) 농법과 같은 철학을 갖기도 한다.
세 농법의 같은 마음
그들의 신념과 철학, 접근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세 가지 방식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 토양과 포도나무를 강제로 조정하지 않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인다는 점이다.
그렇게 할 때, 토양은 스스로 회복력을 갖고, 포도나무는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며, 수확기의 포도에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기게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더 넣으려 하지 말라. 더 많이 관찰하라. 땅과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라.
이런 신념으로 포도가 재배되면, 와인메이커는 양조 과정에서 복잡한 계산을 할 필요가 없고,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정직한 작업을 행하면 된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 자라난 포도를 신뢰하고, 그 포도들이 스스로 와인이 되어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작업인 것이다.

물러섬의 가치를 담는 예술
오랫동안 꽃과 와인이라는 두 세계에 있으면서, 플로럴 디자인과 와인 양조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꽃 작업을 할 때 혹은 꽃 작품을 감상할 때 기억에 남는 꽃은, 그저 빈틈없이 꽉 차거나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작품이 아니다.
시들지 않은 건강한 꽃을 사용해서, 색감과 질감, 비율을 비롯한 모든 디자인 요소들이 정확히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며, 꽃들 사이의 빈 공간조차 의미를 가진 작품일 때, 우리는 그 꽃 작품에서 감동을 받게 된다. 모든 예술품도 소재만 다를 뿐 같은 관점을 공유할 것이다.
와인에서도 같은 원칙을 보게된다.
잘 가꿔진 토양에서 건강하게 수확된 포도는, 양조자에게 무언가 가득 채우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밸런스를 잃은 포도를 보정하기 위한 산 첨가제도, 포도 자체가 채우지 못한 향을 메우기 위한 첨가물도 필요하지 않다. 토양이 전한 미네랄과 에너지가 그대로 포도알 안에 담긴 그 모습을 담아내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은 잔 안에서 조용히 그 층위를 피워내며, 잔이 비워진 뒤에도 계속 말을 건네오는 감동을 전한다. 양조자가 지나친 개입을 하지않고 잠시 한발 물러섰을 때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 앞에 놓인 와인은, 포도밭이 실제로 만들어낸 그대로여야 한다.
좋은 와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와인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말해주는 것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는 친환경 농법이 정말 와인 안에 반영되는 것일까?
의구심에서 비롯된 이런 질문은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해볼 수 있을텐데, 그 답은 와인이 직접 들려주고 있다.
전문가들이 진행한 여러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비오디나미크 와인과 일반 와인을 비교한 결과는 일관되게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전체적인 품질뿐만 아니라, 향, 맛, 질감에서, 비오디나미크 와인이 그 산지의 특성을 선명하게 담아낸다는 평가들이다.
이에 대해선, 부르고뉴와 알자스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우수 와인 생산자들 상당수가 오래 전부터 같은 믿음을 가져 왔다. 그들이 확신할 수 밖에 없는 증거가 바로 그들의 토양 안에, 그들의 와인 안에 담겨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와인 산지들에서 그들의 포도밭들을 걷고, 셀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와인을 직접 시음해 보면서, 자연이 존중받을 때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나의 믿음 또한 그들처럼 확신이 되었다.

유기농·비오디나미크·내추럴 와인이 공유하는 결
유기농·비오디나미크·내추럴 와인들은,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공유한다: ‘순수함(purity)’
와인의 순수함이란, 포도가 어디서 자랐고 어떻게 돌봐졌는지를 말해주는, 맑고 꾸밈없는 명료함이다. 과일향은 직접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나며, 산도는 날카롭거나 인위적이지 않고, 밝고 생동감이 있다.
섬세하면서도 질감이 있는 미네랄은 토양으로부터 바로 전해지는 듯 하고, 그 너머에는 생생한 활기가 숨 쉬고 있다.
알코올은 타오르지 않고, 타닌은 압도적으로 조여오지 않으며, 어느 한 요소가 도드라지지 않고 고요한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내가 다시 찾게 되는 와인들, 잔이 비워진 뒤에도 잔상이 오래 남는 와인들에는 언제나 이 세 가지가 있다: 순수함, 생생함, 조용한 균형미.
이는 내가 정해놓고 선택했던 와인의 특징들이 아니라, 좋은 와인이라 생각되는 와인들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한 하나의 흥미로운 공통점이자 특징의 패턴이었다.
그리고 그 와인들의 시작점을 들여다보면 답은 늘 같은 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땅을 억지로 조정하려는 대신, 그 땅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임을 선택한 포도밭들로.
내추럴 와인·유기농·친환경, 어떻게 고를까
와인 코너에서 이런 와인들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다.
와인을 고를 때, “이 와인을 만든 포도는 어떻게 자란 것일까?” 라는 하나의 질문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먼저, 라벨에서 Organic, Biodynamic, Sustainable 이라는 단어를 찾아본다. 이 단어들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산업적으로 재배된 방식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였다는 의미이자, 자연을 깊이 신뢰하고 존중하며, 토양을 건강하게 지키는 농사를 지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하지만, 때론 라벨에 이런 용어들이 안 쓰여있는 경우가 있다.
라벨 그 너머
자연에 대한 선한 신념으로 만들어진 와인들이어도 때로는 공식적인 인증 마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인증 절차는 비용이 많이 드는 까닭에, 실제로 친환경 농법을 실행하고 있는 생산자라 하더라도, 서류 절차를 밟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서류 작업을 포기했을 뿐, 신념과 철학은 그들의 포도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라벨에 써있지 않는 경우, 믿을 수 있는 와인 샾이 필요하다. 관심있는 와인이 있다면 그 생산자에 대해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신념을 가지고 포도를 재배하는지 물어볼 때, 와인을 잘 아는 와인 판매자라면 답을 알고 있고, 그 질문을 반가와 할 것이다.
직접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으로, 생산자 웹사이트를 잠시 탐색해 볼 수 있다. 토양 건강, 자생 풀류, 셀러에서의 최소 개입등을 나타내는 이런 용어 — soil health, cover crops, minimal intervention — 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에 진심을 기울이는 생산자가 만든 와인 이라는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철학과 신념들로 만들어지는 와인들은 종종 와인 코너에서 가장 저렴한 와인은 아닐 수 있다. 수확량은 더 적고, 노동력은 훨씬 더 많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 잔 안에서의 가치는 그 이상 이미 충분한 와인들이다.
다음 세대의 포도밭으로 이어질 선한 철학
‘친환경’이나 ‘자연주의’라는 말은 요즘 어디서나 흔히 들리는, 어쩌면 마케팅을 위해 조금은 가볍게 소비되는 단어일지 모른다. 하지만 와인 산지에서 이 말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50년 뒤에도 이 흙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인가?”
이것은 바로 눈앞의 수확량 그 너머를 바라보는 질문으로, 지금 당장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위해 농사 짓겠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철학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이들은 조금 특별한 사람들일지 모르겠다. 정작 자신은 그 풍성한 나무 그늘 아래 앉게 되지 못할지라도 후대를 위해 정성껏 나무를 심고 기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당장의 빈티지보다 더 크고 본질적인 가치에 헌신하는 것, 그곳에는 숭고한 존엄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한 의도로 만들어진 와인을 선택할 때, 우리는 그 아름다운 서사의 일부가 된다. 땅의 소중함에 대한 인정이기도, 다음 세대를 위한 가치로움에 대한 확신이기도 할 것이다.
* 이전 글: [저가 와인이 가성비 와인이 아닌 이유 — 라벨이 말하지 않는 것들 ]
Wine. Flowers. The Art of Living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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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Floria/방플로리아 — 와인 교육자, 작가, 플로럴 디자이너. 캘리포니아에서 세계 와인산지로 여행하며 와인과 꽃,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합니다. 작가 소개 더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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