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캘리포니아 와인 산지를 드라이브하다 보면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포도밭 사이에서 풀을 뜯는 양과 염소 무리이다.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롭고 귀여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차를 멈춰서곤 하는데, 가까이서 인사라도 건네고 싶은 욕심에 조심스레 한발짝 더 다가서면 제일 먼저 나를 발견한 녀석이 먼저 크게 소리를 낸다. 그러면 곧이어 모든 무리의 메에에 하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마치 대단한 환영 인사라도 하듯 합창을 이루며 포도밭 전체를 한가득 채운다.

포도밭에 이들이 있다는 건 누군가 진심으로 땅을 돌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토양을 지키며, 포도나무 고유의 리듬을 존중하고, 오늘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내다보며 농사짓는 이들이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헌신은, 와인 안에 고스란히 담겨 나타나게 된다.
캘리포니아에는 이렇게 농사짓는 와이너리가 적지 않은데, 이번에 소개할 곳은 그중 여섯 곳으로, 와이너리 방문 전에 알아두면 좋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캘리포니아 친환경 와이너리 추천 6 곳
캘리포니아 북부의 안개 덮인 능선에 자리한 소노마 지역에서 캘리포니아 남부 태평양 연안에 자리한 산타바바라까지. 방문을 추천하는 대표적인 캘리포니아 친환경 와이너리 6곳.
리토라이 Littorai Wines
리토라이 입구에는 누구라도 크게 세워놓는 그 흔한 표지판도 없다. 하지만 와이너리측에서 미리 정보를 잘 알려주어 다행히 찾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흙길위에 자리한 게이트에서 코드를 누르고 들어서니, 캘리포니아에서 정밀한 피노 누아와 샤도네를 빚는 것으로 잘 알려진 리토라이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의 설립자는 부르고뉴의 여러 우수 도멘에서 수련한 뒤, 오래 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부르고뉴에서 한 도멘의 양조 책임자로 선임된 인물이다.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2000년대 초, 그는 아내와 함께 소노마 해안가 산맥에 자리한 언덕 부지를 매입했고, 친환경 농법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다는 비오디나미크 농법으로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을 시작했다.
내가 방문한 때는 추수를 앞두었던 시기로, 포도밭에는 두세 주 후 수확될 피노 누아가 건강한 모습으로 마지막 성장기를 열심히 담아내고 있었다. 포도밭을 살펴보며 돌아 나오는데 반대편으론 천연 퇴비들이 가득 쌓여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넓은 부지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염소 무리를 지나니, 한쪽으로 마련된 헛간에선 포도밭에 해충 방지제로 뿌려질 허브 차가 발효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안쪽으로는 천연 비료를 만들기 위해 나무껍질, 식물류와 라벤더가 가지런히 놓여 건조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달의 주기를 따라 포도 재배를 하고, 병입 시기까지 결정할 정도로, 비오디나미크 농법에 대한 헌신이 양조 과정까지 이어지는 곳이다.
리토라이의 피노 누아는 꽃향과 붉은 과일이 중심이며, 생생한 산도와 구조감 덕에 오랜 숙성이 가능하고, 샤르도네 역시 오크보다 미네랄과 해풍의 청량감이 이끄는 절제된 스타일이다. 리토라이의 단일 포도밭(single vineyard) 와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부르고뉴같은 표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추천 와인: 싱글 빈야드 피노 누아, 싱글 빈야드 샤르도네
방문: 예약 필수 — littorai.com
스팟츠우드 Spottswoode Estate
나파밸리의 세인트 헬레나 마을 서쪽, 포도밭 뒤로 빅토리안 스타일 하우스가 살짝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면 스팟츠우드에 잘 도착한 것이다.
에스테잇의 시작은 1880년대로, 마야카마스 산맥 기슭에서 처음 포도재배가 이루어진 이후 소유주가 몇번 바뀌어오다, 1970년대 초, 젊은 의사 부부가 이 곳을 인수하며 새롭게 시작되었다.
스팟츠우드의 첫 카베르네 소비뇽은, 에스테이트 설립 정확히 100년 되는 해에 출시되었고, 곧이어 유기농 농법이 도입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그런 시도는 나파밸리에서 모험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CCOF 유기농 인증, 비오디나미크 인증, 그리고 나파밸리 최초의 B-Corp 인증까지 차례로 획득하며 기업 운영 전반의 사회적·환경적 책임까지 아우르고 있다.
현재 에스테이트는 설립자의 두 딸이 운영하고 있고, 포도밭은 20개 이상의 블록으로 나뉘어 있어서 전지, 캐노피 관리, 수확 시기를 블록마다 각각 따로 조율한다. 이런 섬세한 관리가 스팟츠우드를 차별화하는 것으로, 그 가치는 이들의 와인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추천 와인: 에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 소비뇽 블랑.
방문: 예약 필수 — spottswoode.com
프로그스 립 Frog’s Leap Winery
이곳의 설립자는 뉴욕 서부의 낙농가에서 자라 UC Davis에서 포도재배와 양조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나파밸리 와이너리들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자신의 와이너리인 프로그스 립을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 나파밸리에서는 최초로 CCOF 유기농 포도밭 인증을 받았다.
이곳의 모든 포도나무들은 처음부터 건식 농법(dry farming)으로 재배되어 왔는데, 이는 인공적인 관개시설이 아닌, 빗물과 토양의 자연 수분만으로 포도를 기르는 방식을 말한다. 포도나무가 물을 찾아 토양 깊이 뿌리를 내리면 토양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과실을 맺게 되고, 건강한 토양이라면 필요한 수분을 스스로 담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설립자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와이너리는 나파밸리 러더포드(Rutherford) 마을의 백년이 훨씬 넘은 역사적 농장 건물에 자리해 있고, 건물 뒤편으로는 채소, 허브, 꽃, 과일 나무가 사계절 자라는 상당한 규모의 정원이 펼쳐진다.
이곳의 가든 테이스팅(Garden Tasting)은, 이 유기농 정원과 마야카마스 산맥 전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진행되는데, 나파밸리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편안한 테이스팅 경험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프로그스 립의 철학은 균형, 절제, 테루아에 대한 존중으로, 나파밸리 대부분의 카베르네가 알코올 14.5%를 넘기는 시대에 프로그스 립은 꾸준히 14% 미만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 결과, 이들의 와인은 파워보다 우아함을 선택하며, 토양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와인들이다. 현재 운영에 참여한 2세대 또한 그 신념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다.
추천 와인: 에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 소비뇽 블랑.
방문: 예약 추천 — frogsleap.com
릿지 빈야즈 Ridge Vineyards
실리콘밸리 너머로 높이 솟은 산타크루즈 산맥(Santa Cruz Mountains) 안에는 캘리포니아 와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와이너리 하나가 조용히 자리해 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던 때가 기억난다. 꽤 좁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계속 차로 오르는데, 과연 이 길이 맞긴 한건가 싶을 정도였다. 아마 GPS가 없던 시절이라 그 의아함이 더 컸을 듯하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니 어느 순간 시야가 열리면서 와이너리와 포도밭 전경이 펼쳐지는 곳에 다다랐다.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이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이곳의 포도밭 역사는 1880년대가 시작이지만, 오늘날의 릿지를 만든 건 1960년대 초 이곳에 정착한 스탠퍼드 연구소 출신의 공학자들이었다. 이렇게 생산된 몬테 벨로 카베르네는 1976년 ‘파리의 심판’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5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고, 30년 뒤 동일한 와인들로 치러진 리테이스팅 심사에서는 1위를 차지하며 그 우수성을 다시 증명해냈다.
이런 화려한 역사에 가려져 종종 간과되는 부분이, 바로 릿지의 포도 재배 방식이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포도밭을 유기농법으로 전환하기 시작해서, 현재는 전체 포도밭을 100% 유기농 인증 표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산업화 이전(Pre-industrial)’ 모습이라 부르는 이들의 양조 철학은, 천연 발효, 최소한의 이산화황, 그리고 빈티지마다 모든 첨가물과 양조 과정을 뒤쪽 라벨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정직성에 기반한다.
몬테 벨로 포도밭의 석회질 토양은 캘리포니아에서도 매우 드문 환경 조건으로, 미네랄, 구조감, 절제된 우아함이 돋보이는 와인으로 빚어질 수 있게 하는 토양이다. 이렇게 생산되는 몬테벨로 카베르네는 수년간의 오랜 숙성이 필요한 와인이지만, 그 기다린 시간만큼 보답해주는 와인이다.
릿지의 또 다른 거점인 리튼 스프링스(Lytton Springs) 와이너리는 소노마 지역 힐즈버그 마을 쪽에 자리해 있고, 이곳은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가는 또 다른 편안함을 준다. 이곳에서는 테라스에서 이들의 진판델을 음미하면서 100년 이상 된 올드 진판델 포도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고, 또한 몬테벨로에서 생산되는 와인들도 같이 테이스팅할 수 있다.
추천 와인: 몬테 벨로 Monte Bello (카베르네 블렌드), 몬테 벨로 샤르도네, 리튼 스프링스 Lytton Springs (진판델 블렌드)
방문: 예약 추천. 두 곳의 에스테잇; 몬테벨로(쿠퍼티노), 리튼 스프링스(힐즈버그) — ridgevineyards.com
타블라스 크릭 Tablas Creek Vineyard
타블라스 크릭의 이야기는 샤토뇌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의 명가 ‘샤토 드 보카스텔(Château de Beaucastel)’의 페랭 가문과, 그들의 와인을 수십 년간 미국에 소개해 왔던 미국인 와인 수입업자의 우정에서 시작된다.
캘리포니아에서, 남부 론(Rhône) 지역에 유사한 토양과 기후를 가진 땅을 수년간 찾았던 이들은, 드디어 1980년대 후반 파소 로블스(Paso Robles) 서쪽의 라임스톤 석회질 언덕에 정착하게 됬다.
이들은 보카스텔에서 직접 무르베드르, 그르나슈, 시라, 루산, 비오니에 등의 포도나무를 들여왔고, 이 품종들을 이 지역 포도 재배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이것은 훗날 파소 로블스에 ‘캘리포니아의 론 밸리’라는 별칭을 안겨주게 되었는데, 타블라스 크릭은 단순히 역사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역사 자체를 직접 써 내려간 주역이라 할 수 있다.
포도밭 환경으로는, 2000년대 초 유기농 인증을 획득한 데 이어, 10여 년 후에는 비오디나미크 인증이 뒤따랐다. 그리고 2020년에는 와인 업계 세계 최초로 ‘재생 유기농 인증(Regenerative Organic Certified)’ 포도밭이 되었는데, 이는 단순 유기농 인증을 넘어 토양 재생, 동물 복지, 사회적 공정성까지 아우르는 최상위 농업에 대한 인증이다.
전체 포도밭은 인공적으로 물을 주지 않는 건식 농법(Dry-farming)으로 관리되고 있고, 양, 알파카, 당나귀, 올빼미, 벌, 그리고 피복 작물(cover crop)등이 포도나무와 함께하며 하나의 온전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파소 로블스 시내에서 태평양을 향해 서쪽으로 15분쯤 달리다 보면 공기가 서늘해지고 오크 나무들이 울창해지는 곳에 닿게 되는데, 이곳에 타블라스 크릭이 자리해 있다.
이 서늘한 환경은 와인에 고스란히 드러나서, 순수한 과실미, 생동감 넘치는 산도, 그리고 테루아를 그대로 표현하는 투명함을 느낄 수 있다.
추천 와인: 에스프리 드 타블라 Esprit de Tablas (대표 론 스타일 레드 블렌드), 에스프리 드 타블라 블랑 Esprit de Tablas Blanc
방문: 매일 오픈 — tablascreek.com
알마 로사 Alma Rosa Winery
UC 버클리에서 지리학을 공부한 설립자의 학문적 배경은 그 시작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부르고뉴의 기후 데이터를 분석한 후, 차에 온도계를 장착하고 산타 바바라 카운티의 모든 뒷길을 샅샅이 조사했다. 계절별, 시간별로 온도를 기록하며, 우수한 피노 누아를 만들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지닌 서늘한 부지를 찾아다닌 것이다.
그렇게 그가 발견한 곳은, 산맥이 잠시 끊기며 태평양쪽으로 열리게되어, 차가운 바다 공기가 내륙으로 곧장 불어 드는 지형을 가진 계곡, 지금의 산타 리타 힐즈(Sta. Rita Hills) 산지였다.
1971년, 그는 식물학자 파트너와 함께, 오늘날 ‘샌포드 앤 베네딕트(Sanford & Benedict)’라 불리는 포도밭을 일구고, 산타 리타 힐즈에서 처음으로 피노 누아 재배를 시작했다. 산타 이네즈(Santa Ynez) 강 위쪽 북향 언덕지에 자리한 이 포도밭은 당시 그 누구도 포도를 심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땅이었다.
이후 다른 와인메이커들이 그 뒤를 따랐고, 대부분이 이곳의 삽수를 가져가서 자신들의 포도밭을 시작하면서, 산타 리타 힐즈 지역 전체가 성장해 올 수 있었다.
이렇게 산타 리타 힐즈의 새로운 역사를 써냈던 그가, 자신의 첫 와이너리였던 샌포드 와이너(Sanford Winery)를 떠나 2000년대 초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알마 로사(Alma Rosa)의 시작이다.
그는 이곳에서 유기농법에 중점을 두었고, 알마 로사의 에스테이트 포도밭인 ‘엘 하발리(El Jabali)’는 산타 바바라 카운티 전체에서 최초로 유기농 인증을 받은 포도밭이 되었다.
엘 하발리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서늘한 기후의 특징과 정교함을 담고 있다. 피노 누아는 뛰어난 절제미와 구조감, 그리고 잔 속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깊이감을 보여주며, 샤르도네는 해안가 산지의 뉘앙스인 짭조름한 미네랄의 청량감을 지니고 있다. 모두 생산량보다 품질의 선명함을 가치 있게 여기는 양조 철학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What to look for: 엘 하발리 피노 누아(El Jabali Pinot Noir), 산타 리타 힐스 샤르도네(Sta. Rita Hills Chardonnay)
방문: 뷰엘턴(Buellton)과 솔뱅(Solvang) 두 곳의 테이스팅 룸, 매일 오픈 — almarosawinery.com

자연을 담아내는 와인
나파 밸리에서 산타 바바라의 해안가 언덕에 이르기까지, 이 여섯 생산자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진정한 영혼을 담아낸다.
각자가 지닌 포도와 토양, 그리고 서사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비전은 단순히 트렌드로서의 ‘환경 친화’ 그 너머를 향한다. 이는 인내와 장인정신, 그리고 땅과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이자 신뢰이다.
그러한 그들의 철학과 와인들을 알아가는 의미있는 여정이 되시길 바라며.
Wine. Flowers. The Art of Living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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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Floria/방플로리아 — 와인 교육자, 작가, 플로럴 디자이너. 캘리포니아에서 세계 와인산지로 여행하며 와인과 꽃,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합니다. 작가 소개 더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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