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와인 꽃향 6, Part 1: 꽃향이 가려지는 이유 & 두 가지 꽃향

와인의 꽃향기를 떠올릴 때, 대부분 많은 영광은 화이트 와인에 주어집니다. 보통 화이트 와인의 꽃향기는 밝고 직관적이어서 잔에 따르는 순간, 보다 쉽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레드 와인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레드 와인 꽃향은 주로 짙은 과실 향, 향신료, 흙내음 아래 조용히 자리해 있어, 화이트에 비하면 좀더 은은한 향으로 표현되기에 집중하며 찾아보면 좋습니다.

플로리스트로서 꽃을 다루는 일을 오래 해오다 보니, 와인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익숙한 꽃향들을 찾아보곤 합니다. 기억 속에 자리한 그 향들을 늘 떠올려 보며 와인 향을 음미해 봅니다.

와인의 향을 감지하는데 필요한 것은 선천적인 능력이거나 거창한 후각 훈련이 아니겠죠. 그보다는 오히려, 그 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향들에 대한 이해가 먼저 더해지게 되면, 와인 잔 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림을 알 수 있습니다.

레드 와인 꽃향 이해하기

주로 선명한 꽃향을 드러내는 화이트 와인에서의 꽃향은, 본질적으로 휘발성이 강한 특성을 갖습니다.

와인 안의 리날롤(linalool)이나 제라니올(geraniol) 같은 화합물들은 잔을 채우자마자 즉각적으로 피어오르는 성질이 있어서, 와인을 따른 직후 바로 매혹적인 향을 발산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성분이 주로 담기는 화이트 와인의 꽃향은, 보통 다른 향들에 비해 먼저 향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레드 와인에서는, 앞서 말한 동일한 꽃향기 화합물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든, 혹은 레드 와인의 깊이를 더하는 베타 이오논(beta-ionone)이나 페닐에탄올(phenylethanol) 같은 화합물들을 갖고 있든, 향의 발현 방식에 명확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레드 와인의 꽃향 성분들은, 레드 와인 안에서 훨씬 더 다양한 향의 레이어들을 만나고, 타닌과 폴리페놀 등의 묵직한 구조체와 결합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합은, 레드 와인의 꽃향들이 공기 중으로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는 속도를 자연적으로 늦추게 됩니다.

마침내 꽃향들이 피어오르게 되어도, 이 향들은 짙은 과실 향, 타닌, 오크, 흙내음등의 향 성분들과 공존하게 됩니다. 꽃은 분명 와인잔 안에 존재하지만, 마치 굳이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 모습과 같습니다.

와인에 담긴 그 꽃향의 실제 꽃 종류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은 화사하고 선명한 윤곽을 지닌 백색과 황색계열 꽃들로 이어진다면, 레드 와인 꽃들은 꽃의 색채도 짙어지고 향의 캐릭터도 더 깊어집니다.

레드 와인 꽃향

레드 와인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여섯 가지 꽃향 중, 이번 part 1 에서는 두 가지 꽃을 소개합니다. 레드 와인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꽃향이기도 합니다.

제비꽃 (Violet)

레드 와인 꽃향 - 숲속의 보랏빛 바이올렛

한국에서 제비꽃 또는 바이올렛으로 불리는 꽃입니다. 이 꽃향은 레드 와인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가장 대표적인 꽃향기 중 하나로, 자신의 존재를 좀더 선명하게 보여주며 피어나는 향입니다.

레드 와인에서 제비꽃 향이 난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보통 창가나 베란다에 놓인 작고 앙증맞은 바이올렛 꽃을 떠올리게 되죠. 그리곤 아마 ‘내 화분에서는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릅니다.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그런 제비꽃(바이올렛) 에는 향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레드 와인 향에서 제비꽃이라 할 때는,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숲이나 울타리를 따라 자라는 야생 제비꽃 종인 ‘스위트 바이올렛(Viola odorata)’을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제비꽃 종류가 자라는데 그 중에서도, ‘향 제비꽃’ 으로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와인 테이스팅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은 많은 경우에 유럽에 그 뿌리를 두는 경향이 있으니 이런 차이들을 알아두는 것이 도움되실듯 합니다.

스위트 바이올렛의 향은, 서늘하고 파우더 향이 나며, 은은한 단내 아래로 마른 흙내음이 있습니다. 향제비꽃을 보게되면 그 향을 맡아보거나 또는 이른 봄 피어나는 라일락 향을 참고해도 좋습니다. 와인에서 말하는 바이올렛 향에 유사한 성격을 보여줍니다.

제비꽃 향을 만들어내는 ‘베타 이오논(Beta-ionone)’이라는 향 화합물은 좀 흥미롭습니다. 이오논 화합물은 코 안의 후각 수용체를 잠깐 마비시키는 묘한 특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후각 피로로 인해 향을 잠시 맡지 못하는 것과는 달라, 제비꽃 향을 찾다보면 마치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진 듯 느껴지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향이 사라진 것 같다면 잔에서 잠시 코를 떼고, 숨을 고른 뒤 다시 맡아보세요. 잔 안에서 다시 피어날 겁니다.

또한 흥미로운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절반 정도는 후각 수용체 유전자의 변이로 인해 베타 이오논을 아예 감지하지 못한다고도 합니다. 만약 와인 잔에서 제비꽃 향이 유독 잡힐 듯 잡히지 않은 경험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유전적 이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와인에서 찾을까

나파 밸리의 영한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나 프랑스 보르도 와인들은 이 제비꽃 향을 가장 선명하게 머금고 있습니다. 신선하고 짙으며, 과실 향의 중심을 단단하게 뚫고 나옵니다.

특히 보르도의 가장 뛰어난 와인들에서 제비꽃 향은 흑연이나 연필심 뉘앙스와 함께 나타나곤 하는데, 이는 보르도 와인의 클래식한 시그니처이기도 합니다.

이들 와인에서의 제비꽃 향은 어두운 과실 향 위로 화사한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와인의 전체적인 구조를 우아하게 끌어올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가하면, 프랑스 북부 론(Rhône) 지역—코트 로티와 에르미타주, 그리고 그 이웃 마을들—의 시라는 제비꽃 향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흑 후추의 스파이시함, 그리고 야생의 풍미와 길들여지지 않은 짭조름한 감칠맛(Savory) 사이사이에서 제비꽃 향을 정교하게 엮어냅니다.

반면 부르고뉴 본 로마네(Vosne-Romanée)의 피노 누아(Pinot Noir)는 붉은 과실 향을 배경으로, 마치 은은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향수처럼 제비꽃을 표현해 냅니다.

말벡(Malbec)과 프티 베르도(Petit Verdot) 역시 이 향을 충실하게 담아내는데, 이들에선 섬세함으로 보다는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표현되는 편입니다.

장미(Rose)

레드 와인 꽃향을 감지하기 위한 빨간 장미 모습

바이올렛에 이어 장미 또한, 레드 와인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꽃향 중 하나입니다.

화이트 와인 속의 장미 향은, 갓 피어난 꽃잎처럼 신선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오죠. 반면, 레드 와인의 장미 향은, 말린 장미나 장미 에센셜 오일처럼 한층 더 짙고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깊어지는 향의 모습을 갖습니다.

어떤 와인에서 찾을까

보졸레의 갸메(Gamay)는 이 장미 향을 가장 부드럽고 섬세하게 품어내는 품종입니다. 마치 찬 이슬을 머금은 듯, 맑은 물 위에 꽃잎을 띄워둔 듯, 신선하고 청초합니다.

어린 네비올로(Nebbiolo) 와인은 영한 활기를 띠죠. 특히 랑게 네비올로(Langhe Nebbiolo)에서는, 마치 줄기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듯 싱그럽고 선명한 장미 향이 피어 오릅니다.

세월이 흐르며 에이징된 바롤로(Barolo)에서도 장미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들 와인에서 장미 향은, 더 오래되고 겹겹이 쌓인 말린 장미 향으로 진화하며, 타르, 가죽, 짙은 흙 내음 사이로 정교하게 녹아듭니다. 이렇게 어둡고 거친 향들 속에서 대비를 이루며 여리게 피어나는 말린 장미 향은, 올드 빈티지 바롤로를 더욱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피노 누아(Pinot Noir)에서의 장미는, 보다 가볍고 투명하게 표현됩니다. 레드 커런트와 래즈베리같은 붉은 과실 향 사이로 촘촘히 엮여진 장미 향은, 마치 잔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듯한 느낌마저 전해줍니다.

또한,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제(Sangiovese)와 남부 론의 그르나슈(Grenache)에서도 장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산지오베제의 장미가 새콤하고 선명하다면, 그르나슈의 장미는 더 둥글고,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듯 풍요로운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어지는 꽃향 이야기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레드 와인의 여섯 가지 꽃향 이야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파트 2 에서는, 나머지 네 가지 꽃인 작약, 라벤더, 히비스커스, 붓꽃 향들에 대해 소개합니다.

와인 향이 어떻게 하나의 꽃을 표현하는지를 넘어, 어떻게 그 꽃이 피어난 전체 풍경까지 잔 속에 담아내는지 그 흥미로운 꽃향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또한 와인의 꽃 향기를 극대화해 주는 방법들인, 서빙 온도, 와인 글래스 선택, 그리고 페어링에 대한 실질적인 가이드도 함께 다룹니다.

▶ 이어 읽기: 레드 와인 꽃향 6 — 파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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