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린더에 별표로 표시해 두어야 할 만큼 중요한 날은 누구에게라도 있다.
그날은 둘만의 로맨틱한 저녁일수도, 가족과의 뜻깊은 식사일수도,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모이는 성대한 자리가 될 수도 있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장소도 장식도 중요하지만, 정성스럽게 마련된 맛있는 음식과 훌륭한 와인만큼 중심이 되어 줄 목록이 또 있을까.
소중하게 기억 될 시간을 빛내 줄, 특별한 날을 위한 와인 추천 12선을 소개한다. 여섯 카테고리마다, 시대를 대표하는 와인 한 병과 그에 못지않게 빛나는 반가운 발견이 될 와인 한병, 각 두병씩을 엄선했다, 특별한 날, 잠시 사치해도 좋을 훌륭한 와인들이다.

특별한 날을 위한 와인 추천: 여섯가지 와인 카테고리
샴페인에서 포트와인에 이르기까지, 이 와인들은 내가 현지에서 이 와인들을 더 알아가고 싶어 결국은 그 생산지로 향했었을 만큼, 개인적으로도 많이 아끼는 와인들이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3 스타 레스토랑을 ‘오직 그 음식을 맛보기 위해 여행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정의하듯, 이 와인들 역시 그 자체만으로 목적지가 되기에 충분한 와인들이다.
샴페인 Champagne
피에르 페테르, ‘레 셰티용’ 그랑 크뤼 블랑 드 블랑 (Pierre Péters, ‘Les Chétillons’ Grand Cru Blanc de Blancs)
정교하고 투명한 샴페인의 정수를 느끼며 세련된 시작을 하고 싶을 때.
르 메닐 쉬르 오제(Le Mesnil-sur-Oger) 마을의 올드 바인에서 생산되는 단일 포도밭 샴페인. 날카로울 정도로 또렷한 산미와 미네랄리티, 팽팽한 긴장감, 놀라운 집중도를 보여준다. 쵸키 미네랄, 시트러스, 오래도록 이어지는 긴 피니쉬까지, 샴페인이 지닌 가장 순수한 정수를 우아하게 보여주는 와인이다.
라르망디에-베르니에, ‘비에이 비뉴 뒤 르방’ 그랑 크뤼 블랑 드 블랑 (Larmandier-Bernier, ‘Vieille Vigne du Levant’ Grand Cru Blanc de Blancs)
부드러운 우아함과 고요한 깊이로 시작하고 싶을 때.
비오디나미크 농법, 올드 바인, 그리고 극도로 낮은 도자주(Dosage)로 완성된 와인으로, 구조감 있는 산도를 유지하면서도 크리미하고 풍부한 질감을 선사한다. 훌륭한 화이트 부르고뉴에서 느낄 법한 깊이와 레이어를 기포와 함께 펼쳐내는 와인이다.
✦ 동일한 코트 데 블랑(Côte des Blancs)의 석회질 토양에서 태어난 두 그로워 샴페인(grower champagne)은 샤르도네가 다다를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같은 땅에서 같은 품종으로 시작되었으나 전혀 다른 목소리로 표현되는 이 두 와인 안에서 코트 데 블랑의 석회질 토양은 하나의 시가 되는 듯 하다.
부르고뉴 블랑 Bourgogne Blanc(White Burgundy)
도멘 르플레브, 퓔리니-몽라셰 프르미에 크뤼 ‘레 퓌셀’ (Domaine Leflaive, Puligny-Montrachet 1er Cru ‘Les Pucelles’)
순수함이 빚어낸 샤르도네의 극치를 경험하고 싶을 때.
‘레 퓌셀(Les Pucelles)’은 몽라쉐 그랑 크뤼 밭들에 이웃한 포도밭으로 늘 그랑크뤼 못지않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우수한 프르미에 크뤼(premier cru)다. 르플레브의 비오디나미크 농법은 매혹적일 만큼 순수한 와인을 만들어내는데, 산사나무 꽃(Hawthorn)의 청초한 향과 젖은 돌 미네랄, 그리고 와인 전체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산도의 골격이 특징이다. 세계 최정상급 샤르도네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부샤르 페르 에 피스, 뫼르소 프르미에 크뤼 ‘페리에르’ (Bouchard Père & Fils, Meursault 1er Cru ‘Perrières’)
풍부한 온기와 깊은 미네랄이 감도는 부르고뉴 블랑을 즐기고 싶을 때.
뫼르소에는 공식 그랑 크뤼 밭이 없기에, ‘페리에르(Perrières)’는 사실상 뫼르소의 그랑 크뤼로 평가받는다. 석회암(limestone) 토양에서 온 특유의 긴장감과 깊은 미네랄리티를 지니며, 아카시아와 인동초 꽃의 은은한 향, 헤즐넛, 시트러스 오일, 그리고 입안에 남는 짭조름한 미네랄 여운이 인상적이다. 위대한 부르고뉴가 갖춰야 할 모든 진중함을 품고 있는 와인이다.
✦ 퓔리니의 샤르도네가 수정 같은 순수함으로 사로잡는다면, 뫼르소는 풍부하고 따뜻한 온기로 매혹한다. 두 와인은 부르고뉴 블랑의 정상에 이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접근을 보여준다.
보르도 Bordeaux
샤토 레오빌 라스 카즈, 생줄리앙 (Château Léoville Las Cases, Saint-Julien)
진중한 구조감과 깊은 밀도가 주는 묵직한 만족감을 원할 때.
레오빌 라스 카즈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꾸준히 1등급(First Growth) 수준의 평가를 받고있는 와인이다. 와이너리의 핵심인 ‘그랑 클로’는 샤토 라투르(Latour) 쪽으로 이어지는 담장에 둘러싸인 포도밭으로, 그들과 작은 시냇물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다. 단단한 구조감과 깊은 밀도를 표현하는 우수한 특성으로, 20년 이상의 긴 인내에 보답하는 아름다운 와인이다.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 생테스테프 (Château Cos d’Estournel, Saint-Estèphe)
이국적인 향의 풍요로움과 생동감이 감도는 보르도를 느끼고 싶을 때.
생테스테프(Saint-Estèphe) 마을에서 독특한 스파이스 향의 매력을 표현하는 와인이다. 높은 메를로 비율이 즉각적인 풍부함을 가져다주고, 이곳의 테루아는 흑연, 담배잎, 복합적인 스파이스 향들로 와인에 특성을 더한다. 어린 와인에서도 직관적인 풍성함을 내어주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깊어지는 변화를 보여준다.
✦ 레오빌 라스 카스는 인내를 요구하고, 코스 데스투르넬은 호기심에 보답하는 와인이라 하겠다. 두 와인은 모두 보르도 좌안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리오하 Rioja
아르타디, 비냐 엘 피손, 라과르디아 (Artadi, Viña El Pisón, Laguardia)
템프라니요에서 부르고뉴의 절제된 우아함을 발견하고 싶을 때.
리오하 와인의 가능성을 새롭게 정의한 와인이다. 아르타디는 리오하의 전통적인 숙성 등급 체계를 벗어나 단일 포도밭 테루아라는 정체성을 선택했고, 그 결과 부르고뉴 그랑 크뤼를 연상시키는 투명하고 고결한 질감의 템프라니요(Tempranillo) 와인이 탄생했다. 바이올렛, 흑연, 실크 같은 타닌, 긴장감있는 산도가 수십 년의 숙성을 가능하게 한다.
무가, 프라도 에네아 그란 레세르바, 리오하 알타 (Muga, Prado Enea Gran Reserva, Rioja Alta)
전통이 빚어낸 리오하의 우아한 깊이를 맛보고 싶을 때.
무가에서 직접 만든 오크통에서 수년간 인내하며 숙성시킨, 클래식한 방식의 우수한 그랑 레세르바 와인이다. 리오하 알타의 고지대 경사면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들어지며, 다크 체리, 진저브레드, 그리고 캐시미어처럼 부드러운 타닌이 피어오른다. 명가로서의 이름에 걸맞는 전통적인 리오하의 정점을 보여주는 와인이다.
✦ 한 생산자는 전통에서 벗어나 와인을 빚고, 다른 생산자는 전통의 중심을 지키며 와인을 빚는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두 와인이지만, 두 곳 모두 세계적인 수준의 템프라니요를 선보이고 있다.
아르헨티나 말벡 Argentine Malbec
주카르디, ‘핀카 피에드라 인피니타’ 말벡, 파라헤 알타미라 (Zuccardi, ‘Finca Piedra Infinita’ Malbec, Paraje Altamira)
고지대 석회암이 선사하는 말벡의 강렬한 집중도를 경험하고 싶을 때.
아르헨티나 말벡이 세계 최고의 레드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증명한 와인이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우코 밸리에서 자란 포도들로 강렬한 집중도를 보여준다. 멘도사의 강렬한 태양을 잊게 만드는 석회질 특유의 산뜻한 산미, 짙은 검은 과실 향, 강렬한 미네랄리티가 아름답게 표현된다.
그란 에네미고, 괄타야리 싱글 빈야드, 우코 밸리 (Gran Enemigo, Gualtallary Single Vineyard, Uco Valley)
안데스 산맥의 고도가 다듬어낸 깊은 복합미를 맛보고 싶을 때.
거친 석회질 미네랄리티와 서늘한 고도의 영향이 돋보이는 와인으로, 카베르네 프랑을 주로 사용하고 약간의 말벡이 블렌딩 되었다. 높은 고도가 주는 서늘한 기후 특성 덕분에 우아한 꽃향기, 절제되고 차분한 풍미, 깊고 다층적인 복합미가 입안에서 정교하게 펼쳐진다.
✦ 동일한 고도와 석회질 토양을 공유하지만, 다른 품종을 선택하여 만들어진 와인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우코 밸리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디저트 와인 Dessert Wine
코프케, 40년 토니 포트 (Kopke, 40 Year Old Tawny Port)
테이블의 그 누구도 진정한 대화가 끝나기를 원하지 않을 때.
가장 오래된 포트 하우스인 코프케(Kopke)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오크통에서 약 40년간 진행된 완만한 산화 과정 속에서 수분은 천천히 증발하고 풍미는 극도로 응축되어, 말린 무화과, 호두, 꿀과 바닐라가 실크처럼 밀도 높은 질감 위에 겹겹이 펼쳐진다.
40년 내외의 세월을 지난 산미는 오히려 더욱 날렵해져 놀라울 정도의 산뜻함이 살아 있고, 그 위에 세워진 복합미를 견고히 해준다. 세월의 깊이만큼 잔안에서 깊은 명상이 느껴지는 와인이다.
클라인 콘스탄시아, ‘방 드 콩스탕스,’ 콘스탄시아 (Klein Constantia, ‘Vin de Constance,’ Constantia)
완벽한 균형미로 특별한 날을 마무리하고 싶을 때.
17세기부터 시작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설적인 스위트 와인으로, 나폴레옹이 유배 시절 찾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적인 포도밭과 전통 방식의 와인 메이킹을 완벽히 복원하여 그 유서 깊은 명성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뮈스카(Muscat) 품종의 오렌지 블라썸, 자스민 꽃향기, 살구와 허니콤의 풍부한 레이어, 넛맥과 생강의 은은한 스파이스가 벨벳 같은 질감 위로 다가온다. 리치한 단맛을 선명한 산도가 끝까지 생생하게 지탱해주는 놀라운 균형미를 보여주며, 수십 년의 숙성력을 갖는다.
✦ 하나는 오크통에서 40년의 세월을 견딘 와인이고, 다른 하나는 한 세기의 침묵을 깨고 되살아난 와인이다. 특별한 날을 마무리하며 전혀 다른 두 가지 와인의 매력을 즐길 수 있다.

특별한 날을 위한 와인. 와인이 만드는 특별한 날.
피에르 페테르의 날렵한 정교함부터 방 드 콩스탕스의 달콤한 균형미까지 이 글에서 추천한 12가지 와인은, 각각의 와인이 지닌 독보적인 아름다움에 바치는 나의 러브레터와도 같다.
이토록 매혹적인 와인들이라면, 굳이 거창한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을 기다리며 명분을 찾을 필요가 없을런지도 모른다. 그저 와인을 핑계삼아 어느 날이라도 오픈한다면, 와인이 그 하루를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하지 않을까.
와인이 만드는 특별한 날.
Wine. Flowers. The Art of Living Well.
© VinFloria · All rights reserved.